본문 바로가기

SELF-LIFE

한 학기가 끝났습니다



2시부터 5시까지 통계시험이었습니다. 카이-스퀘어 적합도 검증의 분석 과정, EMS규칙의 목적, 구형성 가정이 F검정에 미치는 영향까지 완벽하게 적어서 내고 나니 3시. 5등으로 제출하고 나온 게 좀 아쉽네요. 친구와 자축하며 바닐라라떼 한 잔을 마시고, 대학원 세미나 모임에 잠깐 들렀다 다시 재단모임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대학원에서 첫 학기가 끝나는군요.


가장 먼저 드는 감상을 적어 보면: 최소한 이번 학기, 저는 제 生活과 호각이었습니다.

빼먹지 않고 한 주에 두 번씩 운동을 했습니다.
논문은 수업 전까지 모두 완독했습니다.
어떤 자리에서든 가장 많은 질문을 했고, 가장 많이 틀렸습니다.
행정일과 잡무처리에서 싫은 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습니다.
실험 제작은 선생님께서 던져주신 몫을 종종 앞질렀습니다.
할 일은 다 했지만 밤은 한 번도 새지 않았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한 주에 세 번씩 운동을 하며,
수업에 쓰는 논문 뿐 아니라 내 의지로 선택한 논문을 더 읽어내고,
가장 많은 질문을 하되 가장 날카롭고 정확한 질문만을 할 것이며,
선생님께 여쭙지 않아도 혼자서 하나의 프로그램을 짜낼 수 있는 것이고,
할 일을 다 하고 나서도 그 이상의 일들을 추가로 해내는 것이지만,

일단은 이렇게만 마무리짓게 되는군요. 아쉬운 점이 참 많아요.


틀림없이 변화가 있으리라 예상했고(글을 전부 들어내 옮긴 것도 일종의 self-retual이었지요) 예상한 변화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스물 다섯, 1차대전 무렵 기준으로 하면 무려 10년이나 늦은 사교계 데뷔인가요? (웃음) 이제 바야흐로 세상에 삼켜지려 하는 찰나를 살고 있어요. 세상이 저를 꿀꺽 삼켜 영양을 취하고 알맹이를 빨아, 껍데기를 내버리기까진 아직도 많고 많은 시간이 남았네요.

'사회 생활', 다종다양한 인간관계가 그리는 궤적은 풀은 먹인 듯 날카로워 지금도 매일 베이고 찢기고 있지만, 스스로의 사소한 고통까지 신경써줄 여유는 없는 것입니다. 흘리는 피 한 방울에서도 틀림없이 뭔가 배울 수 있는 좋은 시절이니까요.

행정일에서는 도에 넘는 도움은 오히려 해가 될 때도 있다는 것. 
아랫사람에겐 아랫사람에게 필요한 화법이 있다는 것.
윗사람이 바라는 것을 앞질러 생각해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
일정은 신축성 있게 잡고 언제나 Plan B를 예비해 둘 것.
사람 일이란 게 서로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에 내 페이스가 늦어져도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
그 외에도 이루 셀 수 없이, 무수한 지침들을 체득하고 실전에 써먹어 봅니다.  

일상의 요철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매일 애쓰며- 내 공부를 찾기 위해 시간을 쪼개 저항하며.


아마 이젠 그렇게까지 자랑할 만한 건 없을지도 몰라요. 배운다는 건 긴 길이라, 일정한 수준으로 실적을 낼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전까진 지나치게 드러나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자신을 가다듬는 연습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블로그 통계와 방문자 수, 나를 링크한 사람 수에 대한 집착을 스티커 떼듯 떼버리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지요. 하지만 그 집착을 본업과 병행할 순 없을 것 같았어요.

이 길에 들어선 이상 저는 프로페셔널입니다. 저는 심리학자입니다. 비록 그 수준은 박테리아 혹은 미생물(그외 원하는 호칭이 있다면 맘대로 부르셔도 좋아요)보다 하등 나을 게 없을지라도. 그래도, 이런 오기조차 없다면 어떻게 알지도 못하는 미래로 자신을 던질 수 있겠어요?

세상엔 언제까지나 아이로 남아 있길 바라는 사람이 참 많아요. 그렇다면, 누군가는 그런 아이들을 지켜주는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하지요. 그러니 나는 어른이 되자고- 많은 사람들을 지켜줄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어른이 되자고 다짐할 수밖에요. 


그래도- 으쌰.

내일부터는 방학입니다. 정확히 선생님께서 쉬시는 동안. (웃음)
그동안 재빨리 쉴 만큼 푹 쉬어두고, 이틀 빨리 일에 착수해서 밑작업을 준비해 두어야겠지만,
일단은 포탈을 플레이하겠어요. 에반게리온과 공각기동대를 마스터할 거고, 영화관에서 하루종일 살고, 방학 동안 읽을 책 목록도 뽑을 거고- 산다는 건 정말이지 지루할 틈이 없네요.

이 삶이 절 언제쯤이나 폭삭 닳아 버리게 할지, 한번 겨뤄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