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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백

방백 3: 허상과 찌꺼기



사람은 누구나 타인을 부러워하고 동시에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한 사람이 가진 것- 진부할 정도로 통속적인 단어가 되어 버린 외모, 재력, 지위. 좀더 섬세하게 나누어, 마른 몸매, 걸음걸이, 미소, 명문대 재학 혹은 졸업증, 장신구, 비싼 식사와 옷을 결제할 능력, 공연과 전시회 리뷰, 업무상의 성과, 처리할 수 있는 일의 용량, 읽은 책의 목록, 등을 부러워한다. 아주 쉽게, 그 모든 외적인 조건을 한데 뭉뚱그려 일개의 인간처럼 여긴다. 대개의 인간은 타인의 눈에 그런 방식을 통해 구성된다- 빛나는 다면의 허상과 그 뒤에 남겨진 찌꺼기로서. 나는 가끔 내게서 그 모든 <외적인> 요소들을 가차없이 떼어내 버리고 싶다. <외적인 요소>들을 한 겹씩 떼낼 때마다 사람들 역시 한 겹씩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렇게 단 한 명도 남김없이 모든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고 나면 그 자리엔 순수한 반성과 인상, 감각하고 느끼는 내적 표상, 시간에 따라 축적된 성격으로서의 자신만이 남을 것이다. 그 자신, 요컨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찌꺼기로서의 자신이야말로 진짜 <나>에 가깝다. 근원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타인의 찌꺼기 따위는 관심가질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허상만으로도 사람은,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의 허상을 발견했다 믿으며 혹은 허상을 소유하려 애쓰며. 혹은, 허상을 비추는 대상의 존재에 기꺼워하며.

때때로 내 몫으로 남겨진 찌꺼기, 그 속을 헤집어 촉감을 기억해 둔다. 몇 번이고 자신을 세계에 부딪쳐 밀어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