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을 마치고 등록을 누르면 아마 2008년이 되어 있겠죠..^^ 기분이 묘하여라.
작년 1월은 짧은 크리스마스 방학을 마치고 8일부터 시작하는 봄학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지요.
2, 3, 4월 내내 미국에서 보내는 두번째 학기로 분투했습니다.
3월엔 무모하기 짝이 없는 단독 스페인 여행. 계획 수립, 액션, 위기상황 대처까지 모두 혼자 힘으로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4월 중순에는 뉴욕으로 잠시 데이 트립. 내친 김에 밤에 바에서 술 마시고 텅 빈 거리를 걸어 늦게 돌아왔던 기억이 나는군요.
5월 초는 그야말로 미친 듯한 러쉬. 5일간 마지막 레포트 내고 학기 마무리하고, 방 빼고 짐 정리해 한국으로 보내고, 쉬지도 못한 채 바로 뉴욕으로 출발. 뉴욕에서 사흘을 보내고 비행기를 타고 웨스트 코스트로 날아가,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라스베가스를 찍고 다시 사촌이 살고 있는 프로비덴스로 돌아왔습니다. 플리머스랑 케이프 코드에서 가볍게 요양,
그리고 5월 말에 암스테르담을 찍고(...) 귀국.
6월은 푹 쉬면서, 사람들을 몰아서 많이 만났습니다. 근 한달 동안 합석 등등을 합쳐 40여명 정도 만난 듯 싶네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사람 보는 눈이 조금이나마 틔인 듯 싶습니다.
7월부터 사람을 끊고 다시 공부를 해보기로 작심합니다. 날씨 때문에 다소 슬럼프, 감기에 시름시름 앓았습니다. 그래도 7,8월 양달간 GRE 초급을 떼고 일본어 학원을 다녔으니 완전히 놀려두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9월에 개강. 9, 10월은 예습복습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지요. 아, 학사행정에 맞춰 이것저것 처리하느라 좀 귀찮았습니다. 짬짬이 연주회, 콘서트, 연극, 새로이 들을 만한 가수 발굴 등등 문화생활도 잊지 않았습니다. 후배를 만나 학교 근처의 맛집 뚫기. 귀 뒤에 생겨난 혈종을 지집니다.
11월엔 온통 연극, 연극, 연극이었습니다. 지진 혈종이 덧나서 뿔이 됩니다. 뿔을 떼러 통원하면서, 11월 말부터 다시 기말고사 준비.
12월 초에 기말고사 보고, 중하순엔 사람들을 만나고 갖은 것들을 정리하고 방학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병원에 안 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놈의 뿔 낫기 되게 힘들다.
한해를 정리할 만한 한자를 하나 고른다면, 勞(노), 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나마 마음놓고 쉬었던 때는 6월 초중순, 정도였습니다. 사람을 많이 만나면 정신적으로 잘 견디지를 못하는 성격이라. 적당히 프로토타입 하나를 만들어 두고 그걸 쓰곤 하지요. 그 외엔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끌어다 막고 있었고, 또 끌어내려 계속 애를 쓰고, 스스로를 타이트하게 조율하고 다그치는 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어디까지나 내적인 싸움이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이것저것 괜찮은 결과도 많았긴 했죠.
지금도 사실 마음놓고 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2월까지의 계획이 일차 완료되었고, 내일부터 시작합니다. 3월부터 다시 개강할 테고, 3월 내에 또 다른 일정이 겹치고, 아마 6월까지는 다시 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뭐, 늘, 이럴 땐 버텨내느냐 죽느냐, 라고 스스로에게 카드를 들이밀어 봅니다. 6월에 살아 있으면 버틴 겁니다.^^ 아니면 죽는 거고요. 제가 죽거나 잘 안되면 기뻐할 사람들이 어디엔가 있기에-,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서 위안을 얻지 못한다는 게 가장 힘듭니다. 제가 치르고 있는 싸움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영역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직, 심적으로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유일하게 한 사람 남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멋모르던 대학 초년부터 알아왔기 때문에 응석이 가능한 걸지도.
새해 소망- 지금 목표한 건 제 힘으로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소망으로 걸지 않습니다. 역시 지나치게 오만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젊고 가진 건 몸뚱아리밖에 없는 녀석이 그런 오만함조차 없으면 어떻게 고개를 쳐들고 살아가겠어요?
다만 제 힘으로 안 되는 걸 하나만 빈다면, 멘터를 만나고 싶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현명한 멘터. 교수님들은 지나치게 바쁘시고, 주위에 연배 비슷한 또래들은 비슷한 처지라 서로 동병상련이고, 조금 더 나이 많은 사람들도 각자의 삶을 사느라 바쁘더군요. 그래서 기대를 접었습니다.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그 삶의 궤적을 지켜보며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어른을 발견할 수 있길. 지켜보는 것만으로 좀 쉴 수 있길... 사람에게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길.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엔 불가능할 소망일지도 모르겠네요. 차라리 제가 노력해서 20년 후 남들의 멘터가 되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 답답합니다.
어둡네요. 지독하게 어둡습니다. 곧 새해가 밝아옵니다. 봄도 찾아오겠지요. 그때까지 지금의 이 어둠은 새벽의 가장 짙은 어둠이라고 해두지요. 가봅시다. 2008년. 어떻게든. 포기하기 전까진 아무것도 끝나지 않습니다.
작년 1월은 짧은 크리스마스 방학을 마치고 8일부터 시작하는 봄학기 때문에 정신이 없었지요.
2, 3, 4월 내내 미국에서 보내는 두번째 학기로 분투했습니다.
3월엔 무모하기 짝이 없는 단독 스페인 여행. 계획 수립, 액션, 위기상황 대처까지 모두 혼자 힘으로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4월 중순에는 뉴욕으로 잠시 데이 트립. 내친 김에 밤에 바에서 술 마시고 텅 빈 거리를 걸어 늦게 돌아왔던 기억이 나는군요.
5월 초는 그야말로 미친 듯한 러쉬. 5일간 마지막 레포트 내고 학기 마무리하고, 방 빼고 짐 정리해 한국으로 보내고, 쉬지도 못한 채 바로 뉴욕으로 출발. 뉴욕에서 사흘을 보내고 비행기를 타고 웨스트 코스트로 날아가,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라스베가스를 찍고 다시 사촌이 살고 있는 프로비덴스로 돌아왔습니다. 플리머스랑 케이프 코드에서 가볍게 요양,
그리고 5월 말에 암스테르담을 찍고(...) 귀국.
6월은 푹 쉬면서, 사람들을 몰아서 많이 만났습니다. 근 한달 동안 합석 등등을 합쳐 40여명 정도 만난 듯 싶네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사람 보는 눈이 조금이나마 틔인 듯 싶습니다.
7월부터 사람을 끊고 다시 공부를 해보기로 작심합니다. 날씨 때문에 다소 슬럼프, 감기에 시름시름 앓았습니다. 그래도 7,8월 양달간 GRE 초급을 떼고 일본어 학원을 다녔으니 완전히 놀려두지만은 않은 듯합니다.
9월에 개강. 9, 10월은 예습복습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지요. 아, 학사행정에 맞춰 이것저것 처리하느라 좀 귀찮았습니다. 짬짬이 연주회, 콘서트, 연극, 새로이 들을 만한 가수 발굴 등등 문화생활도 잊지 않았습니다. 후배를 만나 학교 근처의 맛집 뚫기. 귀 뒤에 생겨난 혈종을 지집니다.
11월엔 온통 연극, 연극, 연극이었습니다. 지진 혈종이 덧나서 뿔이 됩니다. 뿔을 떼러 통원하면서, 11월 말부터 다시 기말고사 준비.
12월 초에 기말고사 보고, 중하순엔 사람들을 만나고 갖은 것들을 정리하고 방학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병원에 안 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놈의 뿔 낫기 되게 힘들다.
한해를 정리할 만한 한자를 하나 고른다면, 勞(노), 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나마 마음놓고 쉬었던 때는 6월 초중순, 정도였습니다. 사람을 많이 만나면 정신적으로 잘 견디지를 못하는 성격이라. 적당히 프로토타입 하나를 만들어 두고 그걸 쓰곤 하지요. 그 외엔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끌어다 막고 있었고, 또 끌어내려 계속 애를 쓰고, 스스로를 타이트하게 조율하고 다그치는 과정이 반복되었습니다. 어디까지나 내적인 싸움이었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이것저것 괜찮은 결과도 많았긴 했죠.
지금도 사실 마음놓고 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2월까지의 계획이 일차 완료되었고, 내일부터 시작합니다. 3월부터 다시 개강할 테고, 3월 내에 또 다른 일정이 겹치고, 아마 6월까지는 다시 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뭐, 늘, 이럴 땐 버텨내느냐 죽느냐, 라고 스스로에게 카드를 들이밀어 봅니다. 6월에 살아 있으면 버틴 겁니다.^^ 아니면 죽는 거고요. 제가 죽거나 잘 안되면 기뻐할 사람들이 어디엔가 있기에-,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람에게서 위안을 얻지 못한다는 게 가장 힘듭니다. 제가 치르고 있는 싸움은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영역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직, 심적으로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유일하게 한 사람 남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멋모르던 대학 초년부터 알아왔기 때문에 응석이 가능한 걸지도.
새해 소망- 지금 목표한 건 제 힘으로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소망으로 걸지 않습니다. 역시 지나치게 오만한 걸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젊고 가진 건 몸뚱아리밖에 없는 녀석이 그런 오만함조차 없으면 어떻게 고개를 쳐들고 살아가겠어요?
다만 제 힘으로 안 되는 걸 하나만 빈다면, 멘터를 만나고 싶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현명한 멘터. 교수님들은 지나치게 바쁘시고, 주위에 연배 비슷한 또래들은 비슷한 처지라 서로 동병상련이고, 조금 더 나이 많은 사람들도 각자의 삶을 사느라 바쁘더군요. 그래서 기대를 접었습니다.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그 삶의 궤적을 지켜보며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어른을 발견할 수 있길. 지켜보는 것만으로 좀 쉴 수 있길... 사람에게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길. 요즘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엔 불가능할 소망일지도 모르겠네요. 차라리 제가 노력해서 20년 후 남들의 멘터가 되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 답답합니다.
어둡네요. 지독하게 어둡습니다. 곧 새해가 밝아옵니다. 봄도 찾아오겠지요. 그때까지 지금의 이 어둠은 새벽의 가장 짙은 어둠이라고 해두지요. 가봅시다. 2008년. 어떻게든. 포기하기 전까진 아무것도 끝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