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오랜만에 공대생 친구 S군과 조우했다. 계절학기가 마악 끝난 7월의 어느 저녁, 친구는 일본라면집의 긴 탁자에 팔꿈치를 괴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아아. 경영 수업 말야. 아무래도 망한 것 같아. 음? 어이, 에이플러스 받아올 거라고 그랬잖아. 으... 이번 한번만 봐줘. 실은 말야, 이런 일이 있었다구.
"뭐? 선생님한테 '만점짜리 발표문의 완성본이나 예시 같은 게 있으면 좀 보여달라'고? ... 저기.. 그거, 잘못하면 엄청 시비조로 들릴 텐데."
"...어. 사실 그랬어. (한숨) 안 그래도 공대생 남자 다섯이 우르르 몰려갔으니. 난 좀 말리고 싶었지만 점수가 워낙 엉망이기도 했고 차마."
"...하아. 엄청난 일 했네... 여선생님이었잖아. 임팩트가 컸을 텐데."
"...하지만 말야, 공대에선 일상다반사인걸. 우린 문제가 안 풀리거나 프로그램이 안 돌아가서 잘 모르겠으면, '퍼펙트한 예시를 보여달라'고 한다고. 그게 당연한 거고. 배우는 학생이 교수에게 얼마든지 요구할 수 있고, 교수도 그걸로 상처받진 않는걸..."
"...정말?"
순간 아연했다. 위의 시추에이션, 문대생 모드로 시뮬레이션 가동. 역사/사회/영문/국문과, 기타등등의 교수님께 C+이 뜬 레포트를 들고 가서 "왜 제 점수가 이런지 궁금합니다. 확실히 증명하기 위해 만점짜리 레포트의 모델을 보여주십시오." 라고 해보자. ...다른 문대생들도 그럴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경험에 한해선 뺨이나 맞지 않으면 다행이다(특히 교수님이 사회학과나 사학과 쪽이면 더더욱). 잘 해봐야 돌아오는 건 헛웃음이나 비웃음 정도가 아닐까. 그래, 점수가 궁금한 건 이해할 수 있어도, 좀더 나아가 어디가 안 좋은지 지적해 달라고 할 수 있어도, 납득하지 못했으니 만점짜리 레포트의 예시를 보여달라는 건 확실히 무리수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홀이 미세하더라도 어긋맞는 건 어긋맞는 것.
"아. 하긴... 너흰, 답이 하나니까. 언제나."
"응. 답이 하나니까, 답으로 이르기 위한 모델도, 공식도 완벽한 하나뿐이야. 교수는 그걸 보여줄 의무가 있다구. 학생은 배우는 입장이잖아, 어디까지나? "
"과연. 승패가 확실히 갈리는 세계인걸. 모 아니면 도, 0 아니면 1이라... 우린 보통 글빨로 승부라서. 양도 양이겠지만 애초에 글이란 딱 잘라 가르는 기준이 없으니까.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간극인가. 아. 생물방 최선생님이 왜 내게 '사이언스를 하려면 터프해야 해!'라고 했는지 알겠다."
"그런 말을 했어?"
"으응... 승패가 분명히 판가름나기 전까진 엄청 싸워야 할 거 아냐? 뭐 수학처럼 답이 하나가 아니라도, 최적optimizing이란 건 있을 거 아냐. ...선생님도 본질적으론 이과대 출신이었고."
그는 소리내서 웃었다. "어. 사실 그래. 맨날 싸워. 문제풀이 과정을 죽 얘기하면 아 이 바보야, 여기 다 틀렸네, 내 답이 맞다고, 웃기시네 아니라고 나중에 제대로 까 볼래, 기타등등. 서로 절대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아. 일단 내 답이 옳은 거지."
"으윽. 상처받아 버릴 거 같아. 역시 이몸은 온순한 모범답게 문학이나 해야 하는 건가." 익살스럽게 말하고는 라면을 휘휘 저었다.
"응. 그렇게 되면 조교만 불쌍하지 뭐. 왜냐면 조교는 자기 연구 분야가 따로 있어서 학부 수업은 관심도 없고 잘 모르는 경우가 있거든. 그치만 학생들은 교수에게 가서 따질 게 있으면 먼저 조교한테 온단 말야? 왜 이거 틀렸냐, 증명하라, 납득하도록. 클래스가 40명이면 40명 죄다. 우와. 러쉬 당하는 거 보고 있으면 정말 불쌍해."
"그... 그렇구나. 이쪽 문과대 세계에선 조교란 일종의 예수 같은 존재로서... 저렙인간인 학부생과 만렙의 신과 같은 교수를 연결하는 중간자... 교수 얼굴 보기조차 힘들고, 왜 내 학점이 이렇게 나왔나 따질 수조차 없는 수업도 있다구..."
"윽, 그러면 이쪽에선 폭동이 일어날지도... 우리는 기본적으로 1,2,3차 시험 다 공개하거든. 공개해서 붙여놓고 확인하는 거야. 어디가 틀렸나, 왜 틀렸나, 가서 하나씩 대조해 볼 수 있어. 아까도 말했지만 클래스 전원이 거의 다 들러서 확인해. 다음 시험 보기 전까지 정정기간인 거지. 오차라도 있으면 큰일나려구."
"음, 확실히 이쪽도 젊은 선생님들은 그렇게 많이 하시더라. 기준 명확히 해서 항목마다 구체적으로 점수 내시는 분들. 그렇지만 전통적으로 태도점수, 라는 것도 굉장한 몫을 하니까.. 가령 조교를 하면 무조건 에이플러스, 인 경우도 있고." 문득 한숨이 나왔다. 심리학사 학점. 제길. 아버지뻘 선생님께 착한 딸처럼 제대로 부비지 못한 내 죄다.
"...확실히 다르다. 나, 지금까지 전혀 몰랐어. 공대의 수험 스타일."
"응. 나도 경영대 수업 들어보기 전까진 전혀 몰랐어. 많이 당황했어. 사실 그분이 98학번이신데, 우리에게 '지금 무시하는 거냐'고 화를 내셨다고..." 친구는 풀 죽은 표정으로 남은 라면을 후루룩 들이켰다.
"그렇게 스타일이 다르면 행동 패턴도 다른 게 당연하잖아. 몰라서 그랬을 뿐이지, 그러니 다시 한번 말해 보는 건..?"
"지금은 무리인 것 같아. 말한다고 이해해 줄 것 같지도 않고... 솔직히 그분이 공대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기도 했고."
"무슨 편견? 내가 종종 너 놀릴 때 하는- 수염을 안 깎는다거나 늘 쓰레빠만 신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우리더러 '연구만 하지 말고 머리를 쓰라'는 거야. 여기선 '창의성'이 필요하다고. 그건 좀 심하잖아."
난 헛웃음을 흘렸다. "그게 무슨 헛소리? 머리는 지금도 김나도록 많이 쓰고 있잖아! 핀트가 다르다고 너무 비하하신다 그분."
"...쩝. 공대생이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겠지. 그땐 화났는데 뭐 지금은. 그래도 좀 알았어. 그쪽 분위기랄까, 방식이랄까."
"하하하. 어이, 경영대가 문과의 전부는 아니라고. 이과대랑 공과대 분위기가 다른 것처럼. 그렇지만 확실히... 얘기 들어보니 알겠어."
그렇다. 목적하는 바가 다르다. 다소 거칠게 나누어, 이쪽(문과대)의 최대 관심사를 한 점으로 수렴하면, 인간. 그쪽(이공대)은, 인간 아닌 사물. 이쪽은 답이 여러 개. 그쪽은 답이 한 개. 당장은 사소해도 장르별 엔딩의 차원은 상상을 초월한다. 문제를 보는 관점도 접근하는 방식도 엄청나게 달라진다. 관점과 방식이 달라지면, 각 분야에 속한 사람들의 태도 역시 엄청나게 달라진다. 소통이 잘 안 되는 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단지 다루는 지식을 서로 모르는 건 둘째치고, 태도 말이다. 세상과 사람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태도.
"나, 공대생이 연애에 벅차하는 이유 좀 알겠다. 단순히 바쁜 거 빼고."
"그, 그런가." 난 녀석을 보면서 씨익 웃었다. "터프한 공학도의 마음으로 여자를 대하면 십중팔구 도망가버릴걸요~!"
"...푸핫. 하긴..."
"응. 이거 잘못됐어, 절대 틀렸어, 용납할 수 없어- 올 오어 낫씽! 이라는 태도는 학문의 영역 밖으로 나가버리면 낭패를 많이 볼걸. 여자는 알고리듬이 아니라구. 그러니까 사물도 사물이지만, 가끔은 인간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실은 그런 녀석들 많아. 주변에."
"...역시."
"아마 그래서 경영대 필수 이수 두 과목을 넣은 거겠지. 열라 연구해도 우리가 어떻게 팔아먹을지 모르면 당하기만 한다는 교수님들의 우려로 추가됐다더라고 (여기서 그는 웃었다) 나름대로 좋은 경험이었어. 성적은 걱정되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경영 두 과목보단 심리 두 과목이 인간을 이해하는 덴 훠-얼-씬! 도움이 되겠지만. 뭐 패스."
문과대의 인문학도(경영대는 저리 가서 너희들끼리 따로 놀앗!), 이공대의 과학도. 언제쯤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 언제쯤 얼마나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언제쯤 어떻게 서로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을까? C.P.스노의 Two Culture만 봐도 알 수 있는걸. 빅토리아 시대부터 이미 반목은 극에 달했다는걸. T.S. 엘리엇이 황무지를 쓰고 로스트 제너레이션이 세계의 종말을 고하던 그 시절이, 과학도들에겐 물리학자 러더퍼드가 선언한 bon voyage, 엘리자베스의 시대였다는걸. 난 과학을 좋아하고, 과학적인 사고방식에도 어느 정도 익숙하다. 그 녀석도 순혈 공대생이라기엔 취미가 문과대스럽다. 그러니까 서로를 얼마간 이해하고, 또 이해해 보려 할 여지가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세상엔 그렇지 않은 인문학도- 혹은 과학도가 더 많을 것 같은 건, 단지 내 사소한 우려일까.
그런 생각을 머금고 라면집을 나섰다. 그래도 다행이다. 적어도 내겐 공대생 친구 녀석이 있으니까. 잘 모르면, 물어보면 되니까. 그럼 섣불리 편견으로 재단하는 일 역시, 줄어들 테니까.
우린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고 먹을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해. 너희는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걸 다루지. 둘 모두, 충분히 나름의 의미와 가치가 있어. 그 점 잊지 않으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