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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이론연구 수업에 보낸 편지


(최근 블로그는 자뻑의 기록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 오늘은 그 목적과 의도에 충실한 한 편의 포스팅이다)



여러분,

여러분의 학우가 푸코의 이론을 바탕으로 우리 문화읽기를 시도하였습니다. 푸코의 이론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정갈하게 작성된 글입니다. 읽어 보시고 의견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수업의 최종목표를 실현한 한 가지 좋은 예를 보여주신 저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ㅇㅇ 드림

후유소요님,

 

푸코의 글에 대한 완벽한 '공감'을 바탕으로 하지만 푸코를 언급하지 않고서 주변의 일상을 읽고 있네요. 큰 즐거움을 주어서 감사합니다. 두 개의 글 모두 약간만 더 다듬어 고대 신문사에 기고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ㅇㅇ 드림


Subject: ㅇㅇㅇ 선생님께: '감시와 처벌', 그리고 주변에서 주운 생각들 + 다음시간 진도가 궁금합니다

 

 

ㅇㅇㅇ 선생님께

 

안녕하세요. 금요일에 문화이론연구를 듣는 심리학과 후유소요입니다..^^ (저번 시간엔 운동하고 바로 내려왔더니 첫타임은 그만 졸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ㅠ_ㅠ)

 

텍스트를 읽고 나서 주변을 관찰하며 느낀 바가 조금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생각을 선생님과 (그리고 다른 학우들과도? ^^;) 나누고 싶어 부족하나마 글로 적어 봅니다.

 

1. 최근 중도에 하얀색 DMB를 닮은 좌석배정기가 설치되었습니다. 좌석배정 시스템은 현재 가장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중앙광장 24시 열람실과 백주년기념관에 설치되어 있는 시스템으로, 들어갈 때뿐 아니라 좌석배정시에도 기계에 학생증 바코드를 찍어 칩에 입력된 학번 등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좌석을 배정받는 구조입니다. 관리가 간편할 뿐 아니라 도서관의 사석화를 방지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 시스템은 legalized panoptic power의 일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원하기만 한다면, 관리자는 누가 언제 들어와 어떤 좌석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을, 또한 언제 입실하고 퇴실했는가를 중앙 통제 시스템을 통해 바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학생증을 찍지 않고 출입하거나 타인의 학생증을 도용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은 1개월간 시설 이용을 정지당합니다(백주년 기념관의 경우). 이처럼 통제 시스템을 벗어나는 경우 '범법자'로 취급되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즉 학생들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시스템의 통제 및 감시 하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최근 이러한 시스템이 하나스퀘어 등 여러 곳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최근까지 학생이 원할 때 들어가 자유롭게 앉을 수 있는 열람실은 도서관 자료대출실과 문대 도서관, 그리고 중앙도서관 열람실 뿐이었는데, 그중 맨 마지막으로 언급한 곳에 위의 시스템이 설치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습게도 정작 열람실 자체는 시스템화되지 않은 채 방치되는 바람에, 1층이나 각 층 로비에서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좌석을 배정받아 가면 '지정된 자리'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스템에 심한 거부감을 느낍니다. 거대한 DMB의 정체는 시쳇말로 '충격과 공포'였습니다. 물론 이 시스템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어 온 열람실 자리의 사석화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개인정보를 일일이 보고하고 등록할 필요 없이,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와 원하는 자리에 앉을 자유'를 침해당한다는 것은 부당하면서도 끔찍한 체험입니다. 이제 카드를 찍지 않고 원하는 자리에 앉으면 마치 '룰'을 어기는 것 같아 감히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좌석을 배정받아 들어갔을 때 내가 지정한 자리에 누군가가 앉아 있으면 억울할 뿐더러, 그 누군가에게 '너는 룰을 어기고 있으니 비켜'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이것은 좋지 않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개인적인 견해겠지만, 적어도 제게는 중대한 문제로 여겨집니다. 이것이야말로 시스템에 고분고분 따르는 육체들의 양산, 개개인을 'submissive, docile, and tamed body'화하는 영역의 확장이 아닐까요?

 

지금까지는 어느 정도 선택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중앙도서관의 열람실은 중광이나 백주년기념관에 비해 적긴 하지만 상당한 숫자의 좌석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시스템에 의해 개인정보가 통제당하는 게 싫다면 얼마든지 중앙도서관으로 이동해 원하는 자리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중앙도서관이 이렇게 된 이상 선택의 여지는 예전보다 훨씬 좁아집니다. 문대 도서관은 다들 알다시피 좌석수가 몹시 적고, 지정도서실이나 자료실 내 좌석 역시 충분하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도의 고질적인 사석화에 신물이 난 사람은 이러한 시스템을 환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저 역시 좌석에 책만 덜렁 놓여 있는 것을 보고 '시험때만 공부하는 놈들이.. -_-;' 하며 투덜대는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만), 만일 제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시스템에 의해 감시를 당하기보다는 공부하는 책가방의 주인에게 저주를 내리며 돌아서고 말겠습니다. 매일매일 오만가지로 감시를 당하고 있지만, 그래도 약간이나마 덜 당하는 쪽이 마음은 편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히어로즈나 엑스맨에 상당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밤에 몰래 그 DMB들을 쑥쑥 뽑아 32조각으로 접어 화정으로 향하는 야산 길목에 버렸겠지만 다행히도 보통 사람이군요.

 

쓸데없는 설레발... 이라고 취급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괜찮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이것은 제 견해이며 세상엔 다양한 견해가 있으니까요.

 

 

 

2. http://www.kukinews.com/life/article/view.asp?page=1&gCode=all&arcid=0921055930&cp=nv

 

위에 건 링크는 인터넷 신문 기사로, 은둔형 외톨이- 즉 히키코모리에 대한 소개 및 우려를 담고 있습니다. 아래는 주의깊게 읽은 부분을 발췌한 것입니다:

 

"은둔형 외톨이의 경우 정신과적 질환이 없는 경우만을 말하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은둔형 외톨이들의 경우 정신과적 질환의 유무를 알아보기 힘든 만큼 정신과적 검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이들의 경우 대부분 대인기피증이나 우울증, 과대망상과 같은 여러 가지 정신질환을 포함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

(중략)

 

또 은둔형 외톨이 생활이 장기간 지속 되었을 경우 먼저 충분한 대화를 시도해 먼저 마음을 열게 한 후 정신과를 찾아 정신분열병,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 불안증과 같은 질환을 함께 치료해야 한다.

김 원장은 “은둔형 외톨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며, 최소한 아침, 저녁 시간만이라도 온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많이 나누어야 하고, 특히 청소년의 경우 성적과 학업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게임 중독에 빠져 있지 않은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많은 경우에서 정신분열병의 음성증상에 해당되는 사회적 철퇴(social withdrawal)의 증상과 감별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가족 중에 누군가가 이러한 증상을 보일 경우 최대한 조기에 상담을 받아보거나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막는 것이 현명한 길”이라고 말했다."

 

 

은둔형 외톨이의 케이스는 이미 우리가 좋아하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장편 소설에 소개된 바 있습니다. 작가는 '우울증'이나 '은둔형 외톨이'를 자처하는 야후는 채찍질을 마구 하여 강제노동을 시키는 것이 제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나폴레옹 혁명 이전의 '공개처형'과 유사하여,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개인에게 직접적인 punishment를 가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지식의 세분화와 전문화가 이루어지면서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고, 사회나 제도에 문제를 일으키는 개인을 '재교정'하는 방안을 네트워크 상의 지식에서 구하게 되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가 탄생한 근본적인 배경은 명확치 않으나, 근대 이후의 사회에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사회현상이란 점은 분명합니다. 그러한 현상을 해석하려는 시도 중 하나가 위에 보시는 바와 같이 병리적인 접근- 임상/상담심리학적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위 기사에서는 은둔형 외톨이가 '정신과적 질환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다른 부분을 조금만 읽어 보면 '정신과적 검사' '질환을 함께 치료' '예방이 중요'라는 문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구는 이미 잠정적으로 은둔형 외톨이를 abnormalized object로 규정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즉 과학이라는 권위에 의해 승인된 심리학적 지식, Power-Knowledge에 의해 '은둔형 외톨이'는 비정상적인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정신과적 검사를 받아야 할 대상, 잠정적 치료를 요하는 대상으로 제재당하며, 사회에서 올바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재교화해야 하는 존재로 취급당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취급이 비록 전통적 의미의 처벌이 아니더라도(히키코모리가 범법은 아니므로), 인간을 종속시키는 과정- 인간이 정해진 규범과 사회적 norm에 따르지 않을 때의 제재에 해당하며, 또한 capilary control의 확대에 준하는 사례가 아닐까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저는 은둔형 외톨이인 사람이 저지르는 범죄라거나 사회문제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며, 또한 은둔형 외톨이가 긍정/부정적이라는 판단을 내리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읽은 텍스트에 의거하여 phenomena of producing the abnormal by legalization을 일상 속에서 찾아보고 논의해 보고 싶었습니다.

 

아이 참. 이게 혹시나 시험문제로 나오면 저는 오픈북 앤서를 한 것이 된 걸까요. 갑자기 부담스러워졌습니다.-_-; 기말에 '일상 속의 사례를 찾아보시오' 같은 문제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 바르트의 미셀러니 세 편을 읽어오는 것이 맞는지 궁금합니다. 이미 저번 시간에 다 끝내신 것 같아서...

 

 

후유소요 드림